본문: 마태복음 6:9-13 제목: 기도하는 삶 (The life of prayer) 들어가는 말. 2009년도 새해, 첫 주일이 되었습니다.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는, ‘기도하는 삶’입니다. 기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우리에게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숨을 쉬듯이,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당연히 기도해야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숨을 쉬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그 영혼이 죽은 것과 같은, 매우 위태로운 상태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쉬지말고, 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로, 날마다 하나님과 교통하며, 기도로, 날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모범인, 주기도문입니다. ‘기도하는 삶’을, 올해 우리 교회의 목표로 삼으며,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묵상하기 원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기도의 내용과 형식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이 기도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적절하고, 필요한 기도입니다. 이 기도대로만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생활은 확실합니다. 그 내용과 형식을 살펴보면, 가장 먼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기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한 기도 우리가 가장 먼저 기도해야 할, 우리의 첫번째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필요나 성공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가장 먼저 기도해야할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기도여야 합니다. 그 외의 기도들은, 모두 이 후에, 기도되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억해야할, 기도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가, 우리가 누구인가, 그리고 믿음의 형제들이, 내게 어떤 존재인가를, 이미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이라는 고백은,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창조주시며, 온 우주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여’라는 고백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시며,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축복하신다는 고백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을 같은 아버지로 둔,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하나님 안에서, 모두 한 형제, 자매로서, 서로가 사랑과, 책임의 관계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겠다는, 믿음의 각오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라는 기도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는, 빛과 소금의 삶을 살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소서!’라는 기도는, 우리의 믿음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완성되는 일에, 충성함으로 쓰임받겠다는 고백입니다. 우리의 삶에, 우리 가정에, 우리의 직장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심으로,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되어, 그곳에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우리의 가정에, 우리의 일터에,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되면,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그곳이 곧, 천국을 이루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옵소서!’라는 기도는,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고, 기쁨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름으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뜻보다 우월하심을 인정한다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우리를 향하신 사랑과 인자하심을 확신한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은, 그곳이 곧 천국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거스려지는 곳은, 그곳이 곧 지옥입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이 거스려지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의 용서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뜻을 이루려 힘쓰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이루어지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럴때에, 우리의 삶 속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선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높힘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이세상에 이루어지기를, 힘써 기도합시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 되기를, 힘써 기도합시다. 2. 우리의 필요를 위한 기도 두번째로는, 우리의 필요를 위한 기도입니다. 11절,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일용할 양식’은, 단순한 매일 식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의식주를 포함한, 우리 삶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우리 영혼의 양식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신의 필요도 채워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전인적인 건강과 성숙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의 필요는 물론이요, 우리의 육신의 필요를 위하여도,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필요를 아시고,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를 공급하신다는, 믿음의 확신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만나의 공급하심으로, 광야 생활을 지냈습니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우리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매일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만족한다는, 고백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만큼의 양식으로 만족하며, 도에 넘치거나,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고백의 기도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10년치, 100년치의 양식을 쌓아놓고, 만족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또한,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는, 우리가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일함으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받겠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남을 속이거나, 게을리 얻은 양식이 아니라,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여 일함으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는, 가만히 앉아서, 입에 감이 떨어지기를 기대한다는,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들을 활용하여, 최선의 결과를 하나님께 드리는, 충성스러운 종들이 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기도는, 함께 나눔의 삶을 살겠다는, 고백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함께 먹을 수 있는 양식을, 우리 모두를 위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이, 움켜쥐고 나누지 못함으로, 서로가 굶주리는 비극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기도는, 우리의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함께 나눔으로, 모두가 함께, 일용할 양식을 공급받는 삶을 이루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성 프란시스는 말하기를, ‘배고픈 사람이 달라고하면, 언제든지 주라. 그는 남의 것을 달라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것을 달라고 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복의 근원이십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습니다. 매일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기도로써, 매일의 필요를 공급받는, 믿음의 삶을 삽시다. 3. 사죄와 구원을 위한 기도 세번째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우리의 사죄와 구원을 위한 기도입니다. 12절,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의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신분은, 이제 의인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죄의 용서와, 악에서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을까요? 주님의 비유와 같이, 우리는 이미, 목욕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더 이상, 온 몸을 씻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손과 발을 씻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죄의 용서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매일 죄의 용서를 구하는 것은, 매일 우리의 손과 발을 씻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죄에 넘어지지 않고, 날마다 성결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입니다. 우리의 신분은 의인이지만, 우리의 실제 삶은, 매일 실수하고, 크고 작은 죄를 짓고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여, 우리의 죄를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함으로, 우리에게 죄를 지은 형제들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형제를 용서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세계 대전이후에, 많은 유럽 사람들이, 병고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행한, 독일군의 만행을 용서하지 못해서, 생긴 질병들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 형제의 죄를 용서해 주는 것이, 우리 죄를 용서받는 조건은 아닙니다. 우리의 죄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죄를 지은 형제를 용서함으로,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용서를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깨달을 때에, 우리는 어떤 죄인도,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느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만 달란트 빚진 종의 비유를 통해서는, ‘가장 많이 용서받은 자가, 가장 많이 용서할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용서받고, 용서하는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용서받은 형제들도,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교회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도,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는, 우리로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우리의 시험은, 안에서도 오고, 밖에서도 옵니다. 때로는, 우리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오기도 합니다. 특히, 한가할 때, 유혹이 많습니다. 바쁘게 열심히 일할 때에는, 유혹을 받을 시간도 없습니다. 다윗은, 다른 사람들이 다 전쟁터에 나가고, 자신은, 한가하게 지붕을 거닐 때, 유혹을 당했습니다. 그는 결국, 밧세바와의 간음에 더하여, 충성스런 장군, 우리야를 죽이는 죄를, 더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죄의 반란 지역입니다. 그러므로, 사탄과 악의 세력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우리 중에,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기회와, 유혹의 장소를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탄의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죄에게 기회를 주거나, 유혹의 장소에 얼씬거리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영적으로 게으르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훈련하고, 늘 깨어 기도함으로, 경성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말씀으로 무장하여, 말씀으로 사탄의 모든 공격을 물리쳐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게세마네 동산에서도,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맺는 말. 기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혼의 호흡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쉬지말고 늘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모범으로 삼아, 열심히 기도합시다. 기도의 용사들이 됩시다. 늘 기도로 승리하는, 2009년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993 ~ 2015/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