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고린도전서 8:1-6
제목: 지식과 사랑 (Knowledge and Love)
들어가는 말)
- 나룻배로 강을 건너던 한 선비가, 뱃사공에게 말했습니다.
- ‘자네, 글을 아는가?’
- 뱃사공은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 그 철학자가 말했습니다.
- ‘글을 모르고야, 어찌 사는가?,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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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가 강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에, 심한 바람과 풍랑이 일더니, 배가 뒤집혀 졌습니다.
- 뱃사공이 헤엄쳐 강을 건너면서, 그 선비에게 물었습니다.
- ‘선비 나리, 헤엄을 칠 줄 아십니까?’
- 그 선비가 물에 빠져들며 대답했습니다.
- ‘여보게, 나좀 살려주게! 나는 헤엄을 칠 줄 모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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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것이, 합당한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 당시 고린도의 시장에서 파는 고기는, 대부분이, 우상에게 제물로 드렸던 고기였습니다.
- 크리스챤을 제외한, 당시 대부분의 고린도 사람들은, 그리스, 로마 여러 신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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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시장에서 고기를 사거나, 크리스챤이 아닌, 친구나 친척들, 이웃집에 초대를 받으면, 어쩔 수 없이, 우상 제물의 고기를 먹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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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내의 보수파였던 유대파는, 우상에게 드린 제물이므로, 먹으면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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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에, 헬라인들이 주축이었던 진보파는,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므로, 먹어도 괜찮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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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제로 고린도 교회는, 서로 갈등하게 되었으며, 결국 사도 바울에게,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1) 지식
- 이 문제에 대하여, 고린도 교회의, 질문을 받은 사도 바울은,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나, 사랑은 덕을 세운다’는, 매우 아름다운 답을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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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절,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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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그리스 철학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 세상적인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 보수적인 유대파 성도들 역시, 율법을 잘 알고, 율법의 지식에 풍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 그들은,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 다 나름대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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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들이, 각자 자기의 지식만을 주장하고, 자기와 다른 주장을 하는 형제들을 비난한다면, 그들은, 교만함으로, 교회의 덕을 세우지 못할 것입니다.
- 머리에만 머물러있는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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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미숙한 지식은, 경솔함과 오만, 독선과 방종을 가져오게 합니다.
-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런 대표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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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 이 세상에, 수많은 신들과, 주들이 있지만, 우리를 지으신, 우리의 아버지, 참 하나님은 한분 뿐입니다.
- 그러므로, 우상에게 드린 제물이라도, 믿음으로 거리낌이 없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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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한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닌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큰 유혹이 될 수도 있습니다.
- 자기에게는 아무 거리낌이 없다고 해서, 그렇지 못한 다른 형제, 자매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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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은,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 자기의 많은 지식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기의 지식을 자랑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사랑의 지식만을 자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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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에, Jeannette Walls라는 사람이 쓴, Glass Castle- 유리성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하는데요, 재산도 있고, 대학 교육도 받고, 교사 자격증까지 있는 부모가 있습니다.
- 그러나, 그들의 히피적인 사상과, 무절제함으로, 자녀들을 제대로 양육하지 않습니다.
- 그 결과, 아이들은, 굶기를 밥먹듯이 하고, 어릴 때부터, 스스로 먹을 것을 찾아 해결합니다.
- 심지어 학교의 쓰레기통을 뒤져서, 친구들이 점심시간에 먹다가 버린 음식들을 주워 먹고, 끼니를 해결할 정도까지 됩니다.
- 그 주요 배경이, 웨스트 버지니아 남부의 웰치라는 도시인데, 아직도 그렇게 낙후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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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책을 읽으면서, 바른 신앙과, 바른 생활 철학이 없이는, 아무리 많은 지식과 경험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부모의 바른 신앙과 바른 생활 철학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이들을 최선을 대해 양육하지만, 옳지 않은 신앙과, 옳지 않은 철학은, 넉넉한 환경에서도, 자신과, 주위의 사람들을 비극과 치욕으로 몰아넣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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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미숙한 지식을 자랑하거나, 그 지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거나, 무시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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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된 지식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바로 알고, 내가 누구인가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 그럴 때에,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하며,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2) 사랑
- 미숙한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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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적은 지식을,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 그러나, 사랑이 없는 지식은, 아무리 많은 지식이라도, 삶을 풍성하게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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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우리의 어머니들은, 정식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 글을 모르는 어머니들도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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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들의 자식 사랑은, 누구에 못지 않았습니다.
- 어머니들의 제한된 지식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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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이 덕을 세우기 위해서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 머리에만 머물러 있는 지식은, 결코 덕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 어머니의 가슴으로의 사랑이, 오늘날 우리를 있게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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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 없는 지식은, 온전하지 못한 지식입니다.
-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모든 지식과, 모든 믿음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사랑이 없는, 어떤 지식이나, 행동이나, 믿음도, 아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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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학자 빅토 프랭클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 수용소의 유대인들은, 병으로 죽어가고, 차례차례 개스실로 실려갔습니다.
- 그도 역시, 영양실조로 몸이 극도로 쇠약해졌으며, 언제 개스실로 실려갈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 그런 상태에서 중노동에 시달렸습니다.
- 상황은 최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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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상태에서, 그는 뿔뿔이 헤어져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자기의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했습니다.
-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을 위하여,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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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자 그는,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으며, 노동할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그들이 고통을 이길 수 있기를 위하여 기도했더니, 자신도 자기의 고통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입니다.
- 사랑의 힘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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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노년에 강단에 서기만 하면, “형제들아, 서로 사랑하라!”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고 합니다.
- 사랑이 가장 최고의 믿음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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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계명 중에 최고의 계명이 무엇인가고 물었을 때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37-4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사랑이, 최고의 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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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배려와 양보, 이해와 용납입니다.
-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용납하는 것입니다.
- 상대를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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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덕을 세우며, 교회의 덕을 세웁니다.
- 이러한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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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미숙한 지식의 눈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오직 사랑의 눈으로, 모든 사람들을, 배려하고 용납함으로, 덕을 세우는 삶이 됩시다.
3) 하나님 사랑
- 마지막으로, 사랑의 가장 근본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 3절,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바 되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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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자체가 사랑이십니다.
-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지음을 받았습니다.
-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는,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도록 지음을 받은, 사랑의 존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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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는, 우리의 삶은, 존재 의미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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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죄인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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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
-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다시 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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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일입니다.
- 하나님이 누구신가, 내가 누구인가를, 분명히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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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잠언 9:10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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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했던 다윗은,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 그가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했습니다.
-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왕이 되었음은 물론이요, 메시아의 육신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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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경외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포로로 잡혀간 타국에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며, 승리하는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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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신바가 되어,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 사랑 가운데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며,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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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녹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들림을 받았습니다.
- 아브라함은, 평생을 타국에 나그네로 지냈으나,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 요셉은, 종살이와 감옥살이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므로, 형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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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은, 언제든, 어디서든, 형통하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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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게세마네 동산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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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가 됩니다.
-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됩니다.
- 하나님의 사랑으로, 형제, 자매와 하나가 됩니다.
- 하나님 사랑은, 우리 삶의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맺는 말)
- 지식은 우리를 교만하고 어리석게 만드나, 사랑은 모두의 덕을 세우게 됩니다.
- 우리의 미숙한 지식을, 자랑하는 삶이 아니라, 사랑으로, 서로 덕을 세우는 삶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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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모든 사람들을, 사랑의 눈으로 보고, 이해하며 배려합시다.
- 사랑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늘 하나님과 교제하는, 성도님들의 충만하고, 축복된 삶이 되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